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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텔카스텐, 그냥 쉽게 생각해 보기

제텔카스텐을 설명하려 하면 매번 어렵다. 그래서 인터넷에 올라온 다른 글들을 참고해 보려고 했다.내 눈에는 포스팅 하나가 마치 논문을 쓴 듯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 읽다 보니 한편으로는 너무 커다란 프로젝트로 접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텔카스텐의 처음은 단순히 메모를 쌓아두었던 작은 상자가 아니었을까?그래서 나는 내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설명해 보려고 한다. 생활 속에서. 만약 이사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집안의 모든 짐이 새집으로 옮겨졌다. 처음에는 한꺼번에 들어온 이삿짐이지만 정리할 때는 안방, 중간방, 문간방, 화장실, 세탁실, 베란다, 창고처럼 일단 나누게 된다. 안방으로 들어간 물건도 다시 옷, 책, 서랍에 넣을 것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필요하다면 그 안에서 또..

새 아이디어는 새 노트에?

나는 원래 기록을 잘하는 사람이었을까, 못하는 사람이었을까.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는 웬만한 것은 외우는 습관이 있었다. 전화번호도 몇 번 듣고 외워두는 편이 적어놓는 것보다 편했다.물론 다 외울 수는 없으니 메모도 했다.부지불식간에 받은 전화번호를 아무 종이에나 적기도 하고, 아예 커다란 종이를 테이블에 깔아놓고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적기도 했다. 문구점에 가면 작은 노트에도 자꾸 손이 갔다.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사서 열심히 적는다.문제는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노트를 까맣게 잊고 또 다른 기록을 시작했다. 예전에 적어둔 전화번호를 발견하고도 이게 어디 번호인지 몰라 한참 들여다본 적도 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새 노트에 쓰기도 하고, 지난 다이어리의 빈 곳을 다시..

제텔카스텐이 뭐지?

제텔카스텐(Zettelkasten).처음 들으면 사람 이름 같기도 하고, 무슨 거창한 이론의 이름 같기도 하다.그런데 뜻은 의외로 단순하다.독일어로 Zettel은 쪽지나 메모, Kasten은 상자.말 그대로 하면 ‘메모 상자’다.생각나는 것을 작은 종이에 하나씩 적고, 그 메모들을 모아두는 방식이다. 그런데 그냥 메모를 모으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제텔카스텐에서 중요한 것은 메모의 양보다 메모와 메모 사이의 연결이다.오늘 적은 생각 하나가 예전에 적어둔 생각과 이어지고, 전혀 다른 주제로 적었던 메모가 어느 날 한곳에서 만난다. 그래서 제텔카스텐은 잘 정리된 노트라기보다생각이 쌓이고, 서로 연결되면서 다른 생각을 만들어내는 공간​에 가깝다. 나도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 메모 방식을 다시 꺼내보려고 한다.일..

청키북 10 - 접힌 도안집을 펴다

어머니는 수예와 관련한 사업을 하셨다.요즘으로 말하면 수예품의 반제품, 키트를 준비하여 납품 하는 사업으로, 집이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시장 같았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을 수 없던 시절이라 일본에서 들어온 수예 잡지와 도안집은 중요한 아이디어의 원천이었다. 그 가운데는 1962년에 발행된 부록도 남아 있다. 대부분은 출판연도가 없지만, 적어도 60년이 넘는 시간을 건너온 종이들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 종이들을 보며 자랐다.어머니에게는 작업의 참고서였지만, 내게는 너무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종이들은 내 감각의 한쪽을 오래도록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훼손하는 것이 아까워서 스캔을 해 두려고 했다.하지만 스캔은 정리가 아니라 또 하나의 복제를..

청키북 009 - 어머니의 악보 파일

모듈 009는 어머니의 악보 파일에서 시작한다 책 꽂이에, 분류 미정이었던 오래된 파일 하나를 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합창단에서 사용하시던 악보다.두툼한 파일은 천을 가늘게 찢은 끈으로 묶여 있었다. 틀림 없는 어머니의 습관이다. 한 겹의 파일을 열어 보니 안 쪽에 다시 한 번 천쪼가리 끈으로 묶여 있고 어머니의 글이 제일 앞에 보였다.파일을 한 장씩 펼쳐 보니 가장 오래된 날짜는 1994년이었고, 2001년 비엔나 합창제 일정표 등이 함께 들어 있었다. 합창을 시작하시면서 부터 해외로 열심히 다니셨다.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정신 없을 때 어머니는 비로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시작 하셨을까? 한 권의 파일 안에 여러 해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악보들과 함께 간혹 손글씨들이 보인..

청키북 008 - 스케치북의 두 번째 역할

모듈 008은 오래된 스케치북에서 시작한다. 어린이 책에 삽화를 그리던 시절의 흔적이 보여 반가웠다. 책꽂이에 한 권 남아 있는 책을 보니 1993년에 출판되었다. 그보다 먼저 그렸을 테니 30년이 넘는 시간을 버텨 준 녀석이다. 이번 청키북 작업에 과감히 접어 넣어 보려 했지만, 아직은 아쉬움이 남았다. 나중에 얼굴을 하나씩 오려 내지를 꾸미는 재료로 쓰기로 하고, 대신 스케치북의 표지만 잘라 새 표지로 사용했다. 다행히 그 무렵 구입했던 같은 스케치북이 몇 권 더 남아 있다. 패턴 작업을 하며 크기와 비율을 확인하기 위해 출력했던 프린트도 넣었고, 붓을 닦거나 색과 무늬를 장난처럼 시험했던 종이들도 몇 장 더했다. 언제인지 제주 여행을 다녀오며 작은아이가 사다 준 과자 상자는 ..

청키북 007 - 패턴 연습의 흔적

일곱 번째 청키북 모듈은 오래전 구입했던 패턴 드로잉 워크북 한 권에서 시작한다. 당시에는 이 패턴을 응용해 수업을 진행해 보기도 했다. 작은 패턴을 반복하며 그림을 채워 가는 방식이 흥미로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작업 방식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펜으로 작은 면적을 오래 채우다 보니 자세가 무너지고 몸에 무리가 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조금 더 굵은 매직을 사용하거나, 큰 화면에 자유롭게 응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워크북은 생각보다 종이가 거칠었고, 이미 내게는 충분한 참고 자료가 쌓여 있다. 오래 보관만 하던 책이었기에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한 장 한 장 분해했고 워크북의 표지를 사이즈로 잘라 청키북의 표지로 쓰기로 했다. 이번 청키북에는 완..

청키북 006 - 작업실의 지난 모습

여섯 번째 청키북 모듈은 여전히 오랜 시간 창고에 묵히던 상자들을 정리하며 만들어졌다. 상자를 하나씩 열다 보니 예전에 열었던 개인전 리플렛과 민화 작업 사진, 출력해 두었던 이미지들, 그리고 한동안 받아보던 작은 월간지가 함께 나왔다. 잊고 있었는데 종이들은 묵묵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그 무렵에는 아주 큰 그림을 그렸지만 지금은 사진 몇 장과 리플렛만이 그 시간을 대신하고 있다. 한 장을 접어 만든 리플렛을 다시 펼쳐 보았다. 그림보다 먼저 읽힌 것은 글이었다. 분명 내가 쓴 글인데도 처음 읽는 것처럼 낯설고 부끄럽다. 하지만 몇 줄 읽다 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쓰던 언어와 바라보는 방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자라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출력해 두었던 종이..

청키북 005 - 접어 두었던 세상을 펼치다

다섯 번째 청키북 모듈은 오래된 지도들로 만들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작업실 한쪽 상자에는 오래전부터 모아 둔 지도들이 남아 있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부록으로 받았던 세계지도와 중국 지도, 아메리카 지도, 그리고 여러 나라를 소개하던 화보들이다. 펼쳐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바닥에 늘어놓고 보니 이불처럼 넓게 펼쳐질 정도였다. 어떤 것은 1982년에 제작된 지도였고, 어떤 것은 국가와 지역을 소개하는 특집 부록이었다. 사실 정보로만 보면 이미 오래전에 역할을 끝낸 종이들이다. 국경도 달라졌고, 나라 이름도 바뀌었다. 인터넷을 켜면 훨씬 정확한 지도를 몇 초 만에 찾을 수 있다. 그런데도 버리지 못한 이유를 이번에야 조금 알 것 같았다.젊은 시절 영화 워터월드를 보았던 기억 때문이다.영화..

청키북 004 - 작업실에서 살아남은 종이들

네 번째 청키북 모듈은 복사지와 캔트지로 만들어졌다.다른 작가의 작품을 참고하기 위해 복사해 두었던 자료들, 언젠가 작업에 사용하려고 출력해 두었던 인쇄물들, 그리고 스케치북 사이에 끼어 있던 오래된 낙서들이다. 처음에는 그저 종이 뭉치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하나씩 꺼내다 보니 작업실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종이들이었다.어떤 것은 참고용으로 복사해 두고 사용하지 못한 자료였고, 어떤 것은 작업을 위해 출력해 두었다가 잊혀진 종이였다. 당시에는 꼭 필요할 것 같았지만 결국 다른 길로 가게 되면서 남겨진 흔적들이다. 당시에 나의 견문이 짧은 것도 있지만 책이 귀했다. 누군가 중국에 갔다가 사온거라 하면 한국에서는 못 구한다는 뜻으로 알고 주변의 몇명이 책을 빌려 복사하여 자료로 사용하였다. 또 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