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키북은 오래된 종이를 버리지 않는 방법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다시 사용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세 번째 청키북 모듈은 오래된 미술 자료들로 만들어졌다.
1980년대 후반에 받아 두었던 전시 팸플릿과 도록, 졸업전 자료들이다. 여기저기 끼워 놓았던 것들인데, 잦은 이사에도 흩어지지 않고 여기까지 따라온 것들이다.

오랜만에 펼쳐보니 종이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당시의 표현들이었다.
지금 읽으니 서투르지만 가슴이 뜨거워지는 문장들.
시대와 역사, 민족과 현실을 이야기하던 시절이었다. 젊은 나 역시 미술 주변을 기웃거리며 전시를 보고, 자료를 모으고, 당시를 배워나갔던 때였다.




청키북을 만들기 시작한 이상 자료들은 이제부터 재료가 된다.
40년을 접혀 있었는데 이제는 펼쳐서 빛 보게 하고 숨 쉬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보존보다 재구성으로 가닥을 정했다. 사이즈에 차이가 많이 나는 것들은 접거나 잘라서 크기를 맞추었다. 페이지가 잘려 나가면 그런대로 또 다른 비율의 구성이 생긴다. 처음의 화면은 새로운 화면으로 바뀌기도 했다..
전시 팸플릿은 더 이상 팸플릿이 아니고, 도록은 더 이상 도록이 아니다. 서로 비슷한 시기, 다른 내용의 종이들이 만나 엉뚱한 연결고리를 갖게 된다.


이번 모듈을 만들며 어릴 때 친구와 통화를 했다. 우리는 다른 장소에 있었지만 같은 시절을 걸어온 사람들이다. 청키북 이야기를 꺼냈다가 결국 그 시절 이야기를 한참 나누게 되었다. 그 친구의 서가에는 나와는 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또 다른 청키북의 창고란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집에도 청키북의 재료는 넘칠 것으로 보인다.


청키북은 추억을 보관하는 책이라기보다 추억을 다시 편집하는 책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이번 모듈을 만들며 오래된 작가들의 이름도 검색해 보았다. 여전히 활동하는 사람도 있었고, 기억 속에만 남은 이름도 있었다.
덕분에 이 작은 책 한 권은 종이의 묶음이 아니라, 격동의 80년대를 기웃거렸던 흔적을 다시 들춰보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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