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키북 009 - 어머니의 악보 파일
모듈 009는 어머니의 악보 파일에서 시작한다
책 꽂이에, 분류 미정이었던 오래된 파일 하나를 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합창단에서 사용하시던 악보다.
두툼한 파일은 천을 가늘게 찢은 끈으로 묶여 있었다. 틀림 없는 어머니의 습관이다.


한 겹의 파일을 열어 보니 안 쪽에 다시 한 번 천쪼가리 끈으로 묶여 있고 어머니의 글이 제일 앞에 보였다.
파일을 한 장씩 펼쳐 보니 가장 오래된 날짜는 1994년이었고, 2001년 비엔나 합창제 일정표 등이 함께 들어 있었다. 합창을 시작하시면서 부터 해외로 열심히 다니셨다.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정신 없을 때 어머니는 비로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시작 하셨을까? 한 권의 파일 안에 여러 해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악보들과 함께 간혹 손글씨들이 보인다.
아침 햇살이 찾아 들기 전
작은 소리로 노래하는 나무
아침 햇살이 찾아 들면 가슴을 펴고
햇살을 흔들며 노래하는 나무
오늘은 날씨가 좋아요. 햇살이 눈부셔요.
우리집 나무가 노래부르면
이웃집 나무가 대답을 하고
탐스런 나뭇잎 만큼 가득 열린 참새들
열린 참새들만큼 고운 노래 들려주는 나무
하늘에 그려지는 오선지엔
햇살 한 줌, 내 노래 한가락
(33년 생, 어머니의 글을 옮겨 적었다)


영어 발음을 적고, 숨을 쉬는 곳을 표시하고, 연습하며 덧붙인 메모들이 페이지마다 남아 있다. 어머니는 돌아오지 못하시고 노래도 끝났지만 종이 위에는 그 시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어머니는 실향민이었다. 고향 선후배들과 오랫동안 합창을 했고, 파일 속에는 사리원 고녀(지금의 여고) 교가도 들어 있다. 어떻게 전해진 악보인지는 모르지만, 고향 사람들에게는 오래도록 함께 부르던 노래였던 것 같다.
2010년쯤부터는 내가 악보를 복사해 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파일에 남아 있는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 어머니가 직접 모으고 사용하던 악보들이다.




어머니의 파일을 그대로 살려서 009모듈의 표지로 쓰기로 했다. 파일의 쇠심이 가운데로 위치하도록 파일의 접는 선을 다시 조절해서 잘랐고 겹치는 악보를 골라 뼈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손글씨 부분들을 따로 편집해 붙였다.

마지막에는 오랫동안 악보를 묶고 있던 노란 끈으로 다시 한 번 묶어 주었다.
이렇게 아홉 번째 청키북이 완성되었다. 버려질 뻔한 악보는 다시 한 권의 책이 되었고, 그 안에는 노래보다 긴 시간이 함께 묶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