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키북 005 - 접어 두었던 세상을 펼치다
다섯 번째 청키북 모듈은 오래된 지도들로 만들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작업실 한쪽 상자에는 오래전부터 모아 둔 지도들이 남아 있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부록으로 받았던 세계지도와 중국 지도, 아메리카 지도, 그리고 여러 나라를 소개하던 화보들이다.

펼쳐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바닥에 늘어놓고 보니 이불처럼 넓게 펼쳐질 정도였다. 어떤 것은 1982년에 제작된 지도였고, 어떤 것은 국가와 지역을 소개하는 특집 부록이었다.
사실 정보로만 보면 이미 오래전에 역할을 끝낸 종이들이다. 국경도 달라졌고, 나라 이름도 바뀌었다. 인터넷을 켜면 훨씬 정확한 지도를 몇 초 만에 찾을 수 있다.

그런데도 버리지 못한 이유를 이번에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젊은 시절 영화 워터월드를 보았던 기억 때문이다.
영화 속 사람들은 바다에 잠긴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바다 밑 폐허에서 오래된 물건들을 건져 올린다. 그중에는 책도 있었다. 주인공이 책을 펼쳐 들고 몰입하던 장면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책에서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로고를 봤다.
그 영화에서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단순한 잡지가 아니라 세상을 보여주는 창문 같은 존재였다.

몇 번의 이사를 거치고도 이 지도들은 버려지지 않고 잘 따라왔다.
이번 청키북을 만들며 이 지도들을 처음으로 잘랐다.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종이를 그대로 접어 두는 것보다 새로운 형태로 다시 사용하는 편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우리나라 지도를 먼저 잘랐다. 접다 보면 지금의 현실처럼 다시 분단될 수 있기에 온전하게 표지로 만들 계획이다.


점차 세계지도는 페이지가 되었고, 우리나라 지도는 표지가 되었으며, 오래된 화보는 새로운 화면의 일부가 되었다.


청키북은 오래된 종이를 보관하는 책이 아니다.
어쩌면 오래된 종이에게 새로운 역할을 주는 책에 더 가깝다.
이번 모듈은 지도를 모은 책이 아니라, 오랫동안 접혀 있던 세계를 다시 펼쳐 본 기록이다.

청키북 다섯 개의 모듈을 모아 잡았다.
이제 청키북 본연의 느낌이 나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