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키북 10 - 접힌 도안집을 펴다
어머니는 수예와 관련한 사업을 하셨다.
요즘으로 말하면 수예품의 반제품, 키트를 준비하여 납품 하는 사업으로, 집이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시장 같았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을 수 없던 시절이라 일본에서 들어온 수예 잡지와 도안집은 중요한 아이디어의 원천이었다. 그 가운데는 1962년에 발행된 부록도 남아 있다. 대부분은 출판연도가 없지만, 적어도 60년이 넘는 시간을 건너온 종이들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 종이들을 보며 자랐다.
어머니에게는 작업의 참고서였지만, 내게는 너무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종이들은 내 감각의 한쪽을 오래도록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훼손하는 것이 아까워서 스캔을 해 두려고 했다.
하지만 스캔은 정리가 아니라 또 하나의 복제를 만드는 일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더 선명하고 더 많은 도안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남기고 싶은 것은 그림이 아니라, 어머니의 흔적을 담은 종이다.


그래서 스캔한 이미지를 엮는 대신, 원본을 청키북의 모듈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낡은 종이는 그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강도가 너무 약해 다른 모듈과 균형이 맞지 않았다. 표지는 작업실에 오래 보관해 두었던 파지 더미에서 찾았다. 단풍잎을 오려낸 뒤 남겨 두었던 크라프트지와, 예전에 패턴을 시험 출력했던 꽃무늬 종이가 그 자리를 채웠다.
버리지 않았던 것들이 다시 한 권의 책 안에서 만났다.






열 개의 모듈이 모두 만들어졌다.




열 번째 모듈을 마친 뒤에는 돌 접시를 올려 책을 눌러 두었다. 바인딩이나 수제지를 만들 때 늘 사용하는 방식이다. 종이의 접힌 부분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리는 과정이다.


그러나 아직 한 권이라 부르기엔 이르다.
이제 남은 일은 이 모듈들을 하나로 감싸 줄 표지를 만드는 것이다.
돌아보면 어머니가 참고하던 도안집은 오래된 자료가 아니라 내 작업이 시작된 자리였다.
돌아 보니
내 고향은, 어머니의 작업대였다.